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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자식이 불교에 몸담기를(귀의하기를) 원한다면

웃기 2023. 1. 9.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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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지난 법회에서는 두 아들을 데려온 보살님이 계셨다. 명상 법회에 내가 가장 젊은(어린) 축에 속하는데 아직 앳된 티가 벗어나지 않은 남성 두 분이 앉아있어서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앉아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어 보여서 더).

첫마디에 두 아들이라고 쓴 이유는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것이 제법 드문 일이가 때문이지만, 나름대로의 추측이 있었기도 했다. 매주 법당에서 명상법회가 진행되지만 만약 그 사람들이 명상에 관심이 있어서 어쩌다 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 한가운데에 앉는 것은 그리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고, 보통 남자애들끼리 왔다면 맨 뒤나 맨 구석이나 그런 자리들을 선호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친구들의 근처에 분명 그들의 어머니가 있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나라 불교는 아주 역사가 깊다. 그만큼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였고 다양한 사람들이 몸을 담고 있으며, 수행자나 재가불자나(신도) 그 양태도 다양하다. 그러나 미디어, 또는 주로 비춰지는 이미지, 그리고 실제로 사찰에 방문했을 때 보고 듣는 것을 통하여 대다수의 신도층이 한쪽에 치우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금 나의 어머니 또래 거나 그 위로 있는 7~90대 노보살(여성)분들이 그러하다.

나의 어머니께서도 아주 오랜 신앙생활을 지속해오고 계시며, 나 또한 그 아들들 처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절에 간 적도 있기 때문에 경험자의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도선사

 

어떻게 하면 자식에게 부담없이 종교를 접하게 하는가

첫 번째로 세상에 이런 것이 있다고 알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기왕이면 아주 산골에 있는 암자부터 관광지화 된 큰 절, 그리고 도심 속에 녹아든 현대식 절을 모두 접하게 하는 게 좋겠다. 그리하여 절이란 게 꼭 산속에 가야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편견을 심어주지 않으며 불교란게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온 것들을 실제로 보게 하는 것도 흥미를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무량수전처럼)

두 번째로는 청년을 좋아하거나 아이를 좋아하는 스님을 좋은 인연이 닿는 분으로 소개해주면 좋겠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싶어지게 되고 의지하게 될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님을 지나치게 의존해서 불교가 아닌 스님 개인을 따르게 되는 것은 좋지 않음을 항상 지각하게 하는 것이다. 스님을 보고 다니면 1년을 다니고, 절을 보고 다니면 3년을 다니고, 부처님을 보고 다니면 평생 불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세 번째로는 자식이 어느정도 절에 익숙해졌다 싶으면 좋은 장소들을 추천해 주는 것이다. 사실 어딜 가나 절이 없는 곳은 없다. 잘 보이지 않아 모를 뿐. 부모 없이 낯선 절에 방문해 보는 것. 이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러면 일단 부모 개인의 다양한 경험치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내가 아는 것이라는, 내가 좋은 것이라는 한계를 그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더 좋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절에 가면 도량등부터 해서 초파일등 법당등 여러 ‘’이 걸려있다. 하나같이 표찰을 달고 있어 어느 동네 언제 태어난 누구를 위해 그 등을 달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불교의 행태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치우쳐진 신도층으로 인해, (수행자가 그걸 방관했다고는 표현하지 못한다. 그들이 그렇게 순한 귀를 가진 분들이었다면 스님들 이야기에 변화가 있었겠지) 인당수 물 떠다 놓고 기도하는 기복신앙적인(제발 내 소원 좀 들어주시오) 식의 신앙생활이 주를 이룬다. ‘참 이기적인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불교의 명맥을 유지해온건 바로 그분들이 사찰에 보시하신,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을 위해 등을 달고 대중공양을 하고 스님들께 쥐어드린 그 돈들이다. 만약 당신이 젊은 불자를 자처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불교와 그 운영에 도움이 되도록 어떤 형태로든 보시한 적이 없다면 더욱더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분들이 기도한 그 바람은, 항상 자신보다 자신의 가족, 자식을 위한 기도였음을 부정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시간이 있다면 그 무수한 등에 달린 표찰들을 읽어보자. ’극락왕생, 시험합격, 건강발원, 무사귀환 등’이 적혀있다.

이러한 이유로 결론지어 말하자면 불교는 항상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는 그 ‘이‘ 덕분에 유지되어온 것이다. 이 점을 자식이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비로소 우리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엄마가 어디 가서 니 등 올렸다.’,‘너 잘돼라고 100일 기도 하고 왔다’라고 하면, 차라리 그 돈을 나를 주면 내가 더 행복할 텐데라고 이야기하던 나였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이유는 바라건대, 자식을 위한 순수한 애정에서 나온 것이며, 혹여나 기도의 대상이 잘 안 될 경우에도 본인에게 크게 타격이 오지 않게 막고 싶은 방어기제의 한 종류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다만, 자식이 불교에 귀의하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맹목적으로 부처의 형상을 본따 만들었다던 불상에 기도하는 것만이 신앙생활의 방식은 아니고 명상 또는 봉사 등의 활동으로도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면 더욱 좋겠다.



무엇보다 강요하지말자. 다양한 종교를 경험하고 그중 취사선택하게 하자.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해서 답답해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자. 종교의 자유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그런 마음이라면 평생을 불자로 키워놨더니 결혼해서 다른 종교로 간다고 하는 자식을 마주하는 순간 졸도할 수도 있다.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자기 내면의 평화를 위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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