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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문득] 빛 좋은 개살구

웃기 2021. 11. 16.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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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득은 '빛 좋은 개살구'이다.

 

빛 좋은 개살구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광화문으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

청명한 하늘 너머 우뚝 서있는 건물이 보였는데,

맙소사.. 포시즌 호텔 건물이었다.

 

 

 

왜 맙소사냐 하면, 내가 포시즌 호텔에 대한 추억이 있지만, 그것이 좋은 추억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는 2018년 12월 31일. 아프리카에서부터 예약을 잡아 가족끼리 송년회 겸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 전까지 생일 한 번 챙기지 않고, 기념일도 챙기지 않고, 중요한 날은 무조건 나와 관련된 합격발표일, 성적발표일 등 뿐인 도무지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도 인간관계가 엉망인 사람이었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이 죄다 바뀌는, 그리고 이 전에 알던 사람들과는 전혀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전형적인 그런 사람.

 

그 전까지는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는 것에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심리학책을 읽으면서 생일을 잘 챙기고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선물을 준비하는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바로 내 삶에 적용해보려 했다.

 

당시 이 호텔에서 예약해서 식사를 하려면 (뷔페식이다) 인당 13~1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는데, 우리가족은 4명이니까.. ^^ 거침없이 결제했었더랬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추억을 만들고 맛있는걸 먹는 경험을 공유하면 그걸로 만족할 것이었다.

 

 

문제는 우리집에 요리사가 둘 이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입맛에 길들여진 나라는 까칠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을까. 전체적인 감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가격은 아닌데...' 였다.

 

그래도 폴라로이드로 직원이 즉석에서 사진도 찍어주고 부모님이 좋은 경험했다고 하셨으니 그걸로 만족했더랬지..

그 기억이 오늘 우뚝 솟아있는 저 호텔을 보자니 장기기억속에서 스믈스믈 기어나와 청명한 하늘이 무색하듯 가슴을 우울하게 물들였다.

 

이젠 진짜 잊어야지..후..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살다 온 사람들같았다.

 

늘 우아하고 고상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군계일학처럼 닭들 사이를 유유히 거니는 목이 긴 학이 되고 싶었다.

 

일하면서도 대사님이나 참사관님, 기타 고위공무원들이 어떤 식사예절을 갖추고 있는지, 언행을 가지고 있는지, 이 사람들은 메모를 어떻게 하는지 옆에서 서당개처럼 보고 배우려 노력했다. 왜? 그게 좋아보였으니까. 갖고 싶었으니까.

 

(대사님도 사기그릇안에 들은 요거트는 숟가락으로 달그락 거리며 소리내서 먹는다는것을 보고, '아 저사람도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람을 만나면 첫 인상으로 그 사람의 무언가가 정해지는데, 좋은 인상도 주고싶고 좋은 물건도 써보고 싶어서. 비싼 가방, 비싼 옷, 비싼 시계를 사서 몸에 걸치고 다녔었다. 당분간 보기에는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물건으로 나를 꾸몄을 때,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자꾸 더 필요해지고, 금방 물리게 되고, 더 좋은게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점점 통장은 가벼워지게 되었다.

 

하고싶은 대로 했음에도 마음이 풍족하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겉이 번지르르 하면 뭐해, 속이 알차야지.'

'내면이 단단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고싶다.' 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나에게 포시즌 호텔은 그렇다. 단 한 번의 경험으로 평가할 순 없지만, 화려하고 비싸다고 해서 그것이 늘 좋고 내 마음에 들 것이라는 보장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 같다. 그래서 더 다양한 곳을 방문해봐야하고, 많이 봐야하고 먹어보고 마셔보고 느껴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오감을 모두 이용해서 경험을 축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기도 하다.

 

결론은..고맙다 포시즌아..

생각의 전환을 일으켜줘서.

빛 좋은 개살구가 되고싶지 않게 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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